장유 2017. 9. 19. 13:56



오산 : 530.8m 전남 구례군 문척면

지리산을 마주하고 있는 해발 531m의 호릿한 산으로 자라 모양을 하고 있으며,

 높지도 험하지도 않고 비경이 많아 가족동반이나 단체 소풍 코스로 사랑을 받아왔으며,

 죽연 마을에서부터 지그재그로 산 길을 돌아오다 보면 발 아래 감도는 섬진강 물에 눈이 부시고

 더 높이 오르면 지리산 줄기를 배경으로 한 구례 일대의 전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정상에는 서기 582년 연기조사가 세운 것으로 알려진 암자가 있는데 원효, 도천, 진락, 의상대사 등의 성신이 수도를 하였다

하여 사성암이라 불리워지고 있으며,

 이 사성암을 중심으로 풍월대, 망풍대, 배석대, 낙조대, 신선대 등 12 비경이 일품이다




사성암 주차장.





밤이 많이 열린 가을이다.

몇개를 주워 집에서 삶아 먹으니 참 맛있다.


죽연마을과 만나다.



탱자도 보이고 ^^




올라가면서 나도 돌탑하니를 쌓아보고,,,


돌탑.



고즈넉한 섬진강이 너무 멋있다.





쉄터(정자).


꽃무릇(상사화)가 나를 반겨주고.





죽연마을에서 마을 버스가 사성암 주차장에 하차하면,

여기서부터는 도보로 걸어서 사성암으로 올라가야한다 , 멀지않아 올라가는데 힘들지는 않다.. 





무슨꽃???







원효대사(元曉大師)[617~686]는 한국 역사상 최고의 불교사상가이자 사회지도자이다

불교의 대중화에 힘썼으며 화쟁사상(和諍思想)을 통해 여러 개의 종파로 나누어졌던

 불교 이론들을 하나의 입장으로 통합시켰다. 14~15세 때 출가하여.

661년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유학 가던 길에 토굴에서 자다 마신 물이 오래된 무덤의 해골에

고여있던 썩은 물임을 알게 된 후모든 것은 마음에 달렸다는 것을 깨닫고 유학을 포기하고 대중 전도에 나섰다.

 요석공주와의 사이에 후일 대학자가 된 설총이라는 아들을 두었다

그의 사상은 성속일체(聖俗一體사상으로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 등은 원효의 일미(一味화쟁(和諍사상을 잘 보여주는 저작으로,

 외국에 전파되어 중국과 일본의 불교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서울에 있는 원효대교와 원효로는 원효의 이름을 기리기 위해 명명된 것이다.

 

의상대사(義湘大師)[625~702]는 20세에 출가하여 사형(師兄)인 원효(元曉)와 함께 당나라에 가던 도중에

 난을 당해 이루지 못하고그 후 의상은 당나라 사신의 배편을 빌려 타고 건너가

 종남산(終南山지상사(至相寺)에서 지엄(至嚴:중국 화엄종의 시조)의 문하에

현수(賢首법장)와 같이 화엄의 법계원융(法界圓融)의 묘지(妙旨)를 전수받았다

귀국 후 한국 화엄종의 시조가 된다.

 의상은 670년 귀국하여 관음굴(觀音窟낙산사)에서 백일을 기도하고 676년에 왕의 뜻을 받아

 태백산에 부석사를 창건하고 화엄교학을 강술하여 화엄종(해동 화엄종)의 시조가 되었다

그 후 많은 화엄종장(華嚴宗匠)을 배출하였는데, 3천 명의 제자가 있었다

시호는 해동화엄시조원교국사(海東華嚴始祖圓敎國師)이다.

 

도선국사(道詵國師)[827~898]은 신라 말기의 승려이며 풍수설의 대가이다

속성(俗姓)은 금()씨로 통일 신라 시대 김천 청암사를 창건한 승려로 도선국사(道詵國師)로 널리 알려져 있다.

37세가 되던 해에 전라남도 광양시 옥룡사(玉龍寺)에 자리를 잡고 

898(효공왕 2) 세수 72세의 나이로 입적할 때까지 제자들을 양성하였다

도선은 지금부터 2년 뒤에 반드시 고귀한 사람이 태어날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그 예언대로 송악에서 태조 왕건이 태어났다고 한다

이 예언 때문에 태조 이후의 고려왕들은 도선국사를 극진히 존경하였다

저술로는 도선비송악명당기(松岳明堂記)도선답산가(道詵踏山歌)삼각산명당기(三角山明堂記)』 등이 있다.

 

진각국사(眞覺國師)[1178~1234혜심(慧諶)은 고려의 승려이다

순천 조계산(曹溪山)에 들어가 보조국사(普照國師지눌(知訥이 죽자 뒤를 이어

조계종의 2대조가 되어 간화선(看話禪)을 크게 떨쳤다

간화선은 불교에서의 선(수행방법 중 화두(話頭)를 들고 수행하는

참선법으로 중국 당나라 말에 시작되어 우리나라에는 지눌에 의해 처음 전해졌다.

 진각은 한결같이 간화선만을 주장해, “망상을 버리고자 하면 간화만한 것이 없다"라고 했다.

 저서로 선문염송집심요금강경찬선문강요〉 등이 있다.



사성암.










법당에서 아래로 내려다 본 모습.







소원바위.




소원 하나를 적어 걸어두고,,,







오산 : 530.8m 전남 구례군 문척면

산행일자 : 2017. 09.16(토요일) , 날씨 : 맑음

산행경로 : 사성암주차장 - 오산등산로입구 - 톨탑 - 돌탑삼거리 - 쉼터(정자) -

             - 전망대삼거리 - 오산주차장 - 사성암 - 오산(정상)

(원점회구)








오산 정상의 전망대(정자).


전망대에서 본 구례읍 모습.





구례 오산은 경관이 뛰어나 "그 바위의 형상이 빼어나 금강산과 같으며,

예부터  소금강"이라고 기록되어 있다.봉성지(구례향교 발간,1800)

굽이치며 흐르는 섬진강과 구례읍 등 7개 면과 지리산 연봉들을 한 곳에서 모두 볼 수 있는 우수한 경관 조망점이며,

 오산 정상의 사찰 건물과 바위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섬진강 건너 멀리 지리산 노고단도 보인다.





사성암(四聖庵):전라남도 구례군 문척면 죽마리 산4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화엄사(華嚴寺)의 말사이다.

 544년(성왕 22) 조사 연기(緣起)가 창건하여 오산사(鼇山寺)라고 했다.

그 뒤 신라의 원효(元曉)와 연기도선(烟起 道詵), 고려의 진각(眞覺) 국사혜심(慧諶)이

 이 절에서 수도했다 하여 이들 네 스님을 기려 이름을 사성암이라 고쳐 불렀다.

1630년(인조 8) 중건하였으며, 1939년이용산(李龍山)이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절 일원은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33호로 지정되어 있다. 건물로는 인법당(因法堂)만이 있으며

유물로는 도선이 조각했다고 전하는 마애불이 있다.




산행끝~~~~~~~~~~~~~~~